오.. 오랫만에 쓰는 여행기.. 지금은 28일 목요일 다시 감비아로 돌아온지 3일째 되는 날이다. 물론 인터넷은 메일 하나 확인하기도 어려우므로 일단 써놓고 나중에나 올리게 되겠지..(사진 첨부는 아프리카 벗어난 다음에야 가능허겠쥐...)

한국에서 멀고도 먼 아프리카에 와 있건만 어떤 면에서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랄까..

1. 잠깐 정리

잠깐 정리해 보자면 2월 말에 일주일 간 몸살처럼 아팠었으며 그 이후에 목이 부었고 머쉬쉽에서는 한국에 가서 좀더 자세한 검사를 받기로 결정하고 아웃리치 시작하자마자 혼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병원 다니면서 검사를 받았고 시간이 꾀나 걸렸기에 아주아주 푸욱~~~ 쉬었다 내 인생에 이렇게 여유가 있을 때가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나도 여유있는 시간이였다 왜냐하면 아무런 스케쥴도 없는 방학정도의 시간이였기 때문에.. 다만 목이 부은 이유와 병명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DTS를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고 친구들과 헤어져서 돌아왔기에 마음만은 편하지가 않았다
병원의 검사에서는 몸에 특별히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고 목의 부기는 겉보기에는 멀쩡할 정도로 가라앉았다 다만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여서 의사선생님은 집에서 더 쉴 것을 권유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다시 아프리카에 돌아와 DTS를 친구들과 같이 마무리하고 그 이후의 계획된 여행을 행하기로 결정했다.
한개도 안 아픈데 한국에서 더 쉬었다간 마음에 병을 얻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망가운데 꿈꾸던 비전여행을 중단하기에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확신 때문이다
다만 이런 상황 가운데 시작하는 여행이므로 너무 무리하지 않을 것과 하나님께 더욱 의지할 것.. 이라는 마음가짐으로..

2. ㅎㅎ 브뤼셀 공항에서의 노숙 & 좋은 만남들

여행의 재개를 아프리카 감비아에 가서 DTS를 마무리 하기로 정했기에 여러가지 준비가 다시 필요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이 없는지 ㅠㅜ...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출발 날자가 되었고.. 나는 출발 직전까지 캐세이에서 루트바꾼 일주권 스캔해서 인터넷에 올려놓느라고 결국 잃어벌인 황혈종이 재발급을 받지 못했다 ㅠㅜ 아버지가 공항까지 배웅해 주셔서 그나마 비행기를 여유있게 탔다 독일의 루프탄자를 이용해서 프랑크 푸르트에 10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먼저 떨어졌다. (한국서 첨 타는 비행기였는데 준비해간 책을 꺼내지 않은 것을 무지하게 후회하였다 -체력이 비축된 상태이므로..)
거기서 다시 브러셀로 가는 뱅기는 3시간 뒤 -_-a 한국서 출발하는 비행기라 한국 사람이 많았었는데 왠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학생 두명에게 말시켜서 그나마 무료한 시간을 달랬다. 고등학교 때부터 학비가 거의 안드는 독일 유학을 결정하고 꾸준히 준비해온 두 친구.. 한국의 대학 생활보다는 많은 고생이 따르겠지만 세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독일에서 공부를 스스로 택한 것이다. 오랜 기간 꿈꾸던 독일 유학의 첫 시작.. 드디어 독일에 도착한 것 정나희 양과 이상희군! 열쉼히 하세여~~ 화이팅! 2시간도 체 이야기 나누지 못했지만 참 대견해 보이기도 했고 여행을 다니며 이런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즐거움에 기분이 참 좋았다.

게다가 브러셀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는 벨기에 주재원으로 현대에서 일하시는 한 가정을 또 만났다. 비행기 게이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아시아 사람들... 다만 어디 사람인지 몰라 눈치만 살피다가~ 쇼핑팩에 한글이 쓰여있는 것을 보고 하..한국 사람이시죠? 하고 인사를^^  짧은 시간이였지만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나한테 너무 겸손하게 대해주셔서 내가 여행하는 이유와 마음가짐들을 편안히 이야기 하게 되었다. 특별히 머쉬쉽도 아시고 선교에도 관심이 많으신 분이셨는데 나에게 기도하는 백성은 망하지 않는다며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시고 벨기에 한인 교회도 기회가 되면 방문하라고 전화번호도 적어주셨다. 이런일들을 통하여서 나의 여행이 단순히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는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보고 배우며 앞으로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항상 생각하는 여행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벨기에에 도착한 것은 밤 10시 반 ..(지금 유럽은 9시나 되어야 해가 지기 시작하더군여)  세번째나 오는 브러셀 공항.. 처음 왔을 때는 뱅기표 도둑맞고 재발행 하느라 엄청나게 고생한 기억이.. 두번째 올때는 뱅기 시간 안맞아서 8시간이나 무료한 시간을 보냈던 이곳.. 정말로 내게는 안 좋은 추억이.. 있는 이 곳.. 반면에 너무나 익숙한 이곳.. 하하 감비아로 가는 비행기는 다음날 오전 11시 35분  13시간의 공백 ㅠㅜ 게다가 밤이 너무 늦어서 어디 나가기도 애매한 시간이고 공한 근처 호텔은 하룻밤에 15만원이 넘는 엄청난 금액이였으므로 노숙하기로 원래부터 마음은 먹고 있었다. 15시간이나 되는 비행 시간으로 몸두 무지하게 지친 상태.. 새벽 한시가 되니 공항은 정말로 썰렁해 졌다. 사람도 거의 없고 노숙할 자리를 물색.. 나랑 비슷한 눈치를 보던 흑인 한 사람.. 먼저 의자 근처에 가서 눕는게 아닌가 ㅎㅎ 그렇다면 나도 사양치 않고~~~ 결국 나는 준비해온 안전줄로 카트에 배낭을 꽁꽁 묶은뒤에~ 마음이 편해져서 다음에는 침낭까지 깔고 4시간 정도를 쿨쿨 잤다. 다만.. 근처에 오락실서 나오는 단순한 배경음악은.. 밤새 들었더니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ㅠㅜ 뚜뚜두 뚜두~~~
새벽 5시 부터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해도 뜨기 시작하고.. 사람들 왔다갔다 하는데 땅바닥에 누워있기 뭐해서 이번에는 의자 근처로 자리를 옮겨서 또 졸기시작.. 6시가 되니 뱅기 몇몇 부쓰들이 문을 열기 시작~ 내가 이용할 비행기는 브뤼셀 뱅기므로 당연히 나는 첫 손님이 되었다. 사람 마음이란게.. 분명히 잘 예약을 했음에도 짧은 영어로 해서 그런지 제대루 안되있으면 어떻하쥐??? 하는 괜한 생각이 들었으나~ 예약은 잘 되어 있었고 비자카드로 결제한뒤에는 바로 뱅기표를 받을 수가 있었다. 아 이제 진짜 아푸리카로 다시 가는구나.. 히히

뱅기는 11시 넘어지만 빨리 체크인 해서 내 짐들을 빨리 수화물에 실고 싶다. 무거운 짐들을 들고 5시간을 또 떼울순 없다!!!  브뤼셀 공항이 익숙해서인지 아니면 뱅기 타는 노하우가 싸여서인지 7시에 아프리카 뜨는 뱅기 부쓰 열자마자 체크인 하고 이제는 짐 걱정 안하고 4시간 버티기.. 집에서 깜빡하고 놓고온 유럽지도를 구하려는데 너무 비싼데다가 영어로 된게 없어서 포기하고 그러던 와중 인터넷 카페 발견..!! 오오오... 쓸수 있냐고 물어보니까 당연하다며 마우스와 키보드를 내주는데.. 얼마에요? 3 euro per 15 minutes 꽤액!!!!!!! 나.. 나중에 올게여~ 히히 씨익 웃어주며 공항을 배외하다가~ 10시경에 문을 연 피자헛에서 super 메뉴를 4.5 유로에 먹구~ 다만 콜라가 2.5 유로다.. 우씨 거의 4천원 돈이잖아 ㅠㅜ 다 먹고 나서 뱅기를 기다리며..
이번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책을 읽는다

아 저 노숙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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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행 why?

... 왜 여행을 떠나는가?
물론 어떤 명확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여러가지 생각이 많았었지만 머리속이 복잡하다 이 여행을 통해서 내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라 생각하는 하나님을 더욱 체험하고 지경을 넓혀서 내 삶의 비전을 더욱 구체화 하도록 또 더욱 열정을 얻도록..

마음에 새기고 새겨야 겠다고 여겨지는 책들을 3권 가지고 왔다.
유통의 비전을 가지게 된 장경철 교수님의 기쁨을 유통하는 삶
내 삶의 목적을 하나님의 가치에서 더욱 묵상하게될 purpose driven life
자기 개발의 가장 탁월한 책으로 생각되는 스티븐 코비의 the 7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

사실은 욕심나는 책들은 많았지만.. 이 3권만은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기기를...

4. 감비아의 공항 삐끼들..

드디어 감비아로 가는 비행기~ 앞에 앉은 두 감비아 청년이 나를 마구 짜증나게 한다. 화려한 옷차림과 악세사리들 가방에 짠득 들어있는 유럽의 고급 축구 브랜드 옷들 ... 내 앞에서 의자는 끝까지 뒤로 제치고 왜 그렇게들 들썩거리고 계속 떠드는 것이야!!!

스튜어디스를 계속 오라가라하면서 먹을거를 요구하고(머 이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뱅기 많이 탄녀석들 같다)
빈부의 격차가 극심한 감비아에서 부유층에 속하는 자녀들이 확실하다. 이런 사람들 보면서 참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내가 탄 비행기는 왕복 870유로니까 1080달러쯤 하는데
감비아에서는 평범한 사람은 한달에 50$ 벌기도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에겅..

비행기는 원래 5:20분 도착예정 .. 그런데 감비아 반줄 도착전 경유하는 세네갈 다카에서 이미 6시 50분 선교사님께는 넉넉잡고 6시에 오시라고 했는데 1시간 이상 충분히 늦어버려서 죄송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는데.. 7시 20분 감비아 도착.. 그런데 시차덕에 2시간이 느려짐.. 즉 정시에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역시나 문제~ 아무도 없는 감비아 공항에서 나홀로 계속해서 삐끼들이 들러붙는 것이였다

잉잉.. 아직 이런 삐끼들에는 대처능력이 충분하지 못한 나  게다가 선교사님 전화번호도 안적어 왔는데.. 삐끼넘들은 계속 친절한 미소를 지으면서 my friend 그러면서 가방 들어주려고 그러고 전화걸어준다고 돈있냐고 물어보고 치근데는 것이다 혼자 무거운 가방 두개나 들고 있는데 넘들 3~4명이 와서 괜히 친절하게 구는데 불안하기 마련 한넘이 가방 한개 들고 튀면 어쩌나 괜히 지갑 꺼냈다가 지갑 날치기 당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양손으론 가방을 꼭꼭 쥐고 나 지금 돈 없어 친구가 6시에 온다는 말만 반복함~

히히 고맙게도 거기서 음료수집 하는 미국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자기는 그런 수법에 지쳤다면서 자기 가게 근처에 얼씬 거리지 말라고 화내는 바람에 넘들 할수 없이 멀찌감치 가고 그 사람이 너는 괜찮다고 해서 얼릉 음료수 집 벤치에 앉았다
히히 약오르지롱~~~ 근데 넘들 끈질기게 저 멀찌감치에서도 6시 되서도 안오면 자기들이 데려다 준다고 손짓 발짓
계속 친절하게 대해주니까 마음이 혹 했으나.. 6시가 되어 광민이 형이 나를 픽업나오고 선교사님 댁으로 향하는 길에 자기들이 더운데 같이 기다려 줬으니까 돈을 줘야한다며 계속 따라온다. 내가 돈 없다고 말했지 않느냐!! 하니까 광민형에게 계속 돈을 요구하더니 우리가 돈을 안주고 차에 타니까 갑자기 arrogant하다면서 아니꼬운 표정을 짓는게 아닌가 허허.. 황당한 넘들.. 그래도 수법이 약간 온순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귀엽게 보이기까지 한다
여행 다니면서 이런 일들을 무지하게 많이 당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잘 대처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러면서 경험을 쌓아가는 거겠지..

그래서 무사히 선교사님에 도착하고~~~
역시 감비아는... 산이 한개도 없고 건조해서 무지하게 멀리까지 확보되는 시야 덕에..
또 이외로 많은 나무와 숲들 덕에... 시원한 기분..

드.. 드디어 아프리카에 도착한 건가?

Posted by 어복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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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전에 너무나 많이 잘해주셨던 감비아에 계신 홍종란 선교사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였지만 그런 만남 허락해주신 하나님께도 감사감사!

나는 아웃리치팀이 일단 감비아 팀으로 속해있고.. 게다가 DTS 학생들이 모두 디브리핑을 위해 감비아에서 모이므로~ 비행기 티켓이 감비아에서 브러셀 것이 6월 초로 되어 있어 그 비행기 날짜를 바꾸기로 하고 ~ 일단 학생들과 함께 감비아로 가기로 했다. 비행기표 날짜 바꾸는 것도 힘들었는데.. 글고 나는 비행기표를 분실했으므로.. 이상하게도 여행사에서는 팩스로 카피를 보내주긴 했는데 괜찮겠지 생각했는데... 나중에 엄청나게 고생했다..(나중에 설명하겠다.)

그.. 그런데 문제는 감비아에서 유럽으로 뜨는 비행기가 일주일에 2-3번 밖에 없는 것~ 감비아 아웃리치 팀 오전에 감비아에 도착하고 다음날 밤에야 비행기가 있는데.. 이틀이나 머물러야 하는데 장소가 마땅한 곳이 없었다. YWAM 베이스도.. 우리가 같이 동행하는 브라질에서 온 선교사 토니가 있는 곳은.. 차타고 4~5시간 가야하는 곳이란다 -_-a 이때 장기영 선교사님의 아이디어로 인터넷 검색 엔진에서 '감비아 선교사' 로 검색했더니 나온 사이트가 바로 홍종란 선교사님 홈페이지 ^^

http://gambia.netian.com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시도하였으나 계속 안되고~~ 3번째에 드디어~ 전화 받으시는 선교사님! 이것도 국제전화였기에.. 길게 통화는 못하고 감사하게도 픽업까지 해주시고 숙소도 제공해주신다고 하시는 감사한 선교사님^^  메일로 간단한 소개와 비행기 시간을 말씀드리고~

배를 떠나며.. 많은 묘한 감정들이 겹쳐졌지만.. 아침엔 친구들과도 모두 작별이므로.. 모두들 서로 껴안고... 처음엔 나는 좀 이상했지만 어느덧 다 적응함.. 나랑 젤 친한 스테파니와 레이첼은 공항에서 정말 머뭇거리다가.. 레이첼이 기니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가자 결국 스테파니 울음을 터트리고.. 결국 감비아 공항에서 나는 모두와 다시 헤어지며 포옹을 다시 하고.. 또 눈물 보이는 스테파니.. 나도 울뻔 했다.. 꾹 참고.. 꼭 회복해서 다시 감비아로 돌아오겠다고 이야기하며 아이들과 헤어졌다.

배웅나오신 홍종란 선교사님! 공항에서 내리자 시에라리온과는 너무나도 다른 감비아의 환경에 놀라는 나.. 같은 아프리카이지만.. 이렇게나 다르다니..  자연적으로는 감비아는 전부 평지다. 높은 건물이 없으므로 멀리까지 다 볼 수 있다. 공해도 물론 없고 시에라리온 같이 습하지도 않다. 즉 안개가 없다는 것.. 사회적으로는 이슬람 국가.. 국교가 이슬람은 아니지만 국민의 90% 이상이 이슬람이라 한다. 이곳 저곳에서 볼 수 있는 이슬람 학교와 이슬람 건축물들..

선교사님 댁에서 김치 볶음밥에 김치 찌개에.. 마치 한국 돌아가기전에 사전 준비라도 하듯.. 다만 같은 음식이라도 한국에서 먹는거랑 거기서 먹는거랑 어떻게 다르겠는가? 으하하 행복했당.

그리고 그 곳에서 선교사님을 돕고 계신 형제님 자매님과의 감사한 만남. 선교사님은 1992년 부터 감비아에서 일해오셨고.. 오랜 기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반쥴은딩이라는 마을 개발지역에 기술센타 건축을 진행중에 계셨다. 그리고 그 곳에서 같이 지내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들과 기술센터에 대한 비전등 여러가지를 내게 나누어 주셨는데 너무나도 감사하고 많이 배우는 느낌이였다. 이슬람 권에서 사역하시면서 어려웠던 점들과..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다가갔을 때에 그들이 변화되는 모습들.. 이게 가장 인상에 남았다. 으.. 이슬람에 대한 공부도 해야하는뎅...


여기가 감비아 학교와 교실~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와서 가르친다던데.. 여기 졸업한 학생들을 다시 기술 센터로~

기술센터 건축을 위한 벽돌들

선교사님이 좋은일 많이 하시니까.. 추장이 이 지대를 그냥 줬다고 한다.

형제를 보내달라고 기도했다던... 광민이형..  형님의 비전은 잘 듣고 많은 도전 받았습니다

감비아의 해변 (홍종란 선교사님이 나를 위해 너무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 이런 좋은 곳도 데려가시고..)

근처의 호텔.. 진짜 아름답다.. 우리돈으로 2만원이면 하룻밤을.. 광민이형은 이곳으로 신혼여행 오고 싶다던데.. 비행기 값을 고려하신후 어려울거 같다 하셨다.

안좋은 기억이 상당히 많은 브러셀 공항.. 새벽 5시 반에 도착했는데.. 다음 비행기가 3시였으니.. 이날 지루해서 엄청 혼났다.. 저번에 환불 안된 유로 전화 카드는 다 써버렸다 하 하 하 하 하!

여행 책에 벨기에에서 비 안맞고 왔으면 갔다왔다고 하지 말라고 하던데 정말인거 같다. 신기한게 여기 벨기에의 대기는 진짜 불안정 한듯.. 구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건 처음 봤다.


내가 이용한 루프탄자. 구세주의 가격.. 850 유로 왕복.. (3개월안 날짜 변경시 100유로) -(원월드 마일리지 적립을 위해 노력했으나.. but... 캐새이는 1000유로도 넘는데다가 날짜 변경시 300 유로 ㅠㅜ/브리티쉬에어웨이~1600유로 -_-a)
그리고 유럽 몇나라 못보긴 했지만.. 독일은 진짜 이뿐거 같다.. 좀 놀다가고 싶었으나.. ㅎㅎ 다음을 기약하며~

그럼 일단 아프리카에서 약속했던 다른 홈피들과 선교사님들 부탁 받은거 완료한 다음에 다시 업뎃 하도록 하겠습니당^^

Posted by 어복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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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가 무지하게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ㅜ 여행이 목적이지 홈피 만드는게 목적이 아니라는 핑계하에.. 관심가져 주시는 분들에게 죄송할 따름.. ^^
그럼 또 기억을 더듬어서 시작합니다..

...

드디어 선상생활 마지막 주다.

첫째, 한국행 결정
이번 주에는 가장먼저 아웃리치 여부를 결정해야했다. 왜냐면 한국으로 돌아갈 경우 비행기 표를 구매해야하기 때문! DTS를 온전히 끝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아쉬움과 약간은 억울한 감정에 좀 힘들기도 했지만, 특별히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있음을 너무나도 많이 느꼈고 또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실 거라는 생각에.. 이미 마음은 평안한 상태였다. 특별히 그동안 많이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친구들의 보모님들이 격려 메일도 보내주시고, 게다가 Amy는 자기 부모님이랑 통화할때 마다 Mr Bog 괜찮냐고 물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나 감사한 마음뿐..
결국은 처음 아팠을 때부터 나를 계속 봐준 닥터덴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한국행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는 보험 처리를 위해 계속 노력해 주었는데, 유럽(영국)이 아닌 한국으로 돌아갈 경우 보험 보상 받기가 어렵다고 계속 걱정해 주더니만.. 나에게 개인의 돈으로 유럽에서 한국까지의 왕복행 비행기표를 사준다는게 아닌가? 정말 감동.. 게다가 덧붙힌 말이 만약 보험 회사에서 비행기 값을 보상해줄 경우에는 그 돈을 자기 개인이 아닌 머쉬십에다 기부하라는 것이였다. 첨에는 어리둥절 했는데, 담당자인 부르스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도움을 주시려는것 같다 말했다. 다만 영어가 짧아서 감사하다는 표현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아서 아쉽다. 올때 남아있던 누릉지 사탕이며 홍삼정이며 몽땅 주고 왔건만.. 나도 이런 멋진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나는 여기와서 one thousand를 자꾸 10 thousand라고 말하는 버릇이 있다. 이번주에 사진 구운 CD를 나눠주는데 Rob이 How much do I owe you? 이렇게 물어봤는데.. 나는 how much만 듣고 over 10 thousand.. 이렇게 이야기 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나랑 친한 steph 내 버릇을 알고 달러스~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다. -_-a
머 이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머쉬쉽 와서.. 빛만지고 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올때 가방 도난당했다고 또 아프다고.. 또 이번엔 한국 돌아갈때 까지.. 물질으로나 기도로나.. ESF에서도 교회에서도 .. 맨날 하나님께 빛만지고 사는 느낌이다.

그리고.. 하나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비행기표가 이렇게 비싼지 미처 몰랐다. 물론 일주일 전에 모든걸 해결하려하니.. 당연히 비싼 비행기표 밖에 없었겠지만.. 어쨌든 비행기 알아보느라 무지하게 힘들었다. 그리고 그 가공할 가격에 깜딱 놀랐다. (대체 비지니스 일등석 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브러셀에, 암스테르담에, 한국에 국제전화를 몇통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또 International alphabet이란게 있는데.. 내 이름 Eh를 불렀더니.. 항공사에서 Echo Hotel? 이러는 것이다. 엥 ?? 먼소리여.. 이게?? 나중에 알고보니 발음이 다른 영어때문에 전화할때 대표 단어를 알파벳으로 정해둔 거였다. 어쨌든 이런 과정에서 여러가지를 배울수 있었다.

둘째.. 일요일에 그동안 친해졌던 한국 분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한국에서 꼭 다시 보자며.. 호프교회 사진을 몇개 올리겠습니다. 이 날에는 한국에서 보석 사업을 하러 먼 곳까지 오신 김집사님과 한 형제님을 만났는데.. 이 분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엄청나게 배웠습니다. 특히 김집사님은 보석 사업으로 세계 곳곳 항상 비행기를 타고 다니시며 일하시는데 여러가지 사고난 것과 어려움들을 회상하시며 글세 3개월전에 교통사고 당하시고 다시 회복하셨다며.. 하나님께 이미 자기 목숨을 쥐고 계신다는 등의 격려의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많은 도전이 되었다.

예배를 마치고..

망고나무 아래에서..(저는 아프리카 와서 망고 실컷 먹었습니다)

윽 사진이 좀 크네요.. 사진 클릭하면 다 보실수 있구요.. 뒤에 건물이 메디컬 케어 센터입니다..
장기영 선교사님.. 내가 떠나와서 머쉬십에 한국사람으로 혼자 계실텐데..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셋째, 아시아 사람들의 우정~ 그리고 새로온 캡틴
지난주에 저녁시간에 밥먹고 있었는데.. 처음보는 아시아 사람과 합석했다. 이 곳에서는 아시아 사람이 매우 드물기 때문에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고 자기는 필리핀 사람이라는 짧막한 소개와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근데 재밌는 것은 처음엔 이 사람이 전혀 새로온 캡틴인지 몰랐다. 근데 나를 많이 놀라게 했다. 하는 이야기마다 성경의 예제를 들어가며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중에 새로온 캡틴이란 이야기를 듣고 역시나 하는 생각과 아시아 사람이 캡틴이 된 것이 참 자랑스러웠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과 인사하고 이야기 하느라 바빠서 더 친해지지 못해 아쉬웠는데.. 필리핀 친구 라몬이 우리들을 동시에 점심식사에 초대한 것이다~ (물론 엄청나게 맛난 점심을 얻어 먹었음은.. 말안하련다.) 그래서 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은디.. 특히 라몬은 나를 볼 때마다 Brother 이렇게 불러주는데.. 하나님이 좋은 친구들을 너무 많이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했다..

왼쪽에 너무나 빠른 영어로 나를 힘들게 했던 회계담당 모모자매님(이름이생각안난다) 킴을 그렇게 귀여워 한다.

나만 보면 뽁! 하고 쫓아오던 녀석.. 마지막 인사할때 힘들었다. 엄마인 린야가 앞으로 못볼거라고 설명하니까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졌는데.. 아직 그런걸 잘 이해 못하나보다. 나중에 이녀석 큰거 보고싶어서라도 필리핀에 꼭 가련다


넷째.. 선상생활을 정리하며..
마지막주라 이것 저것 정리하느라 무지 바쁘다. 특히 사람들과 작별을 해야하므로 한명한명 연락처 적고.. 특히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떠오른다. 사진을 같이 못찍어서 아쉬울 뿐..
특히 은옥이 누나가 꼭 만나보라던 캐나다 할아버지 리차드가 젤 먼저 떠오른다. 내가 아플때 나를 처음 만나서 그런지 나 볼때마다 걱정해주고 좋은 이야기 해주고.. 특히 멀리서 그 할아버지가 어떤 아프리카 친구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설명하시는 것을 보면서 감동받았다. 
트래볼이라는 아저씨(?)도.. 처음엔 딱딱하게만 느꼈는데 나만보면 안녕하세요? 한국말로 인사해주고 재롱(?)도 하시고 진짜 귀여운 아저씨.. 우리 떠난다고 막 슬프다고 ㅎㅎ 자기가 섹시 가이라고 노트도 보여주고
시에라리온 목사님인 데니얼.. 끝까지 교회한번 방문 못해서 너무 미안할 뿐.. 덱일 할때마다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나에게 카드도 전해주고..
음.. 떠오르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끝도 없을것 같아 이만 자제하고...

그리고 DTS 친구들과의 마지막 파티.. 이미 한국행이 정해졌으므로 이야기 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나를 위해서 기도도 해주고... 휴...

12주차를 쓰면서 선상생활을 정리?? 하려고 생각했는데.. 턱도 없는거 같다. 이정도만 쓰고 사진 올리겠다... 인터넷으로는 다 못 올려도...


시에라리온 교회 목사님 친구 다니엘~과 폴~

마지막 아침..

괜히 아쉬운 마음에 배위에서 사진 촬영

타라는 내가 자기의 favorite korean 이라는데...(한국사람은 나밖에 모른단다..)

머쉬쉽을 떠나며..

각각 3팀으로 시에라리온,감비아,기니로 아웃리치를..


Posted by 어복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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