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감비아에 도착한지 4일째 되는 아침. 이곳의 일상은 6시 전에 기상하여 씻구 6시 반경부터 간단한 아침 예배 그리고 나면 빵으로 아침을 대신한 후에 반줄딩이라는 건축 사역을 하는 곳으로 가서 일하는 것이지만~ 나는 선교사님께 말씀드려 오늘은 빠지고 여행기도 쓰고.. 선교사님이 맡기신 컴퓨터를 손보고 있는 중이다
아침일찍이라 그런지 메일을 읽고 보낼만 하다 ^^a
1. 반줄딩 이야기 그리고 건축 사역
감비아에서 10년 넘게 사역하고 계신 홍종란 선교사님께서는 지금 반줄딩 이라는 지역에 기술센터 교회 학교 의 비전을 품으시고 지금 건축 사역을 하고 계시는 중이다. 땅은 부족 추장에게서 받았고 4월 초에 내가 방문 했을 때에는 터만 닦여져 있었으나 지금은 기초 공사가 한참 진행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용되어서 함께 일하고 있다. 우리는 아침에 트럭을 타고 가서 이 곳의 친구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일꾼들을 태워서 반줄딩으로 향한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돈키를 비롯 소 멍멍이 등이 지나가는데 이곳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 광민형은 원숭이도 몇번 봤다고 하시는데.. 생각해보면 정말 웃긴다.
어제는 강아지가 계속 안비키고 자고 있어서 크러쉬를 눌렀더니 깜딱 놀라며 비켰는데 운전사 오또 아저씨랑 Gamnia dog is lazy 하면서 많이 웃었다.
그런데 이 곳 감비아는 대서양의 바람으로 아침 저녁에는 선선하지만 10시 부터 오후 4시 정도 까지는 완전 죽음의 더위이다. 햇살이 얼마나 뜨거운지.. 조금만 밖에 나가 있어도 탈진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선글라스는 필수이다. 선글라스가 얼마나 햇빛으로 부터 눈을 보호해는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겠으나 선교사님들로 부터 여러가지를 배웠다. 대부분은 단순 노동자들인데.. 그들을 감시하는 watch man과 기초공사를 담당하는 Mr Dun 이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임금에 5배 정도는 벌어드리니.. 이들에게 얼마나 교육이 필요한지 또한 느낄수가 있다. 임금은 절대로 일당을 주면 안되고(땡땡이 칠 가능성이 백프로이므로..) 공사 진행 정도에 따라 주는 계약이 되어 있어서 일꾼중 리더들이 그들을 통솔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많아서 예를 들어 날씨가 너무 더워 아이스 크림을 달라고 했을때에 주기 시작하면 그들은 그런 것들을 자기들의 권리로 당연히 여기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주고 싶어도 절제했다가 아주 필요할때만 상황을 봐가면서 잘 주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엄청나게 무더운 날씨 속에 공사 현장은 열악했지만 공사 하나하나가 진행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정말 뿌듯했다.
이 곳에서 감비아의 많은 사람들이 교육받고 하나님을 배워가면서 자기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겠지.. 선교사님은 이런 일을 하는데 예산이 많이 부족해서 7월에 미국으로 후원운동을 하러 가신다고 했다. 들어보면 한국에서 건축하는데 드는 작은 돈으로 이 땅에서는 많은 건축과 큰 사역을 할 수 있으니.. 하나님이 필요한 물질을 체워주셔서 사역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해 본다. 혹시 내 글을 읽으시는 분들중에도 마음이 생기시는 분은 작은 후원이라도 부탁드립니다^^
선교사님 홈피는...
http://gambia.netian.com
입니다
2. 이슬람권인 감비아에서의 아이들의 교육 -학교들과 우리 아이들
여기 있는 광민형이 농담 식으로 말했다. 감비아 인구가 많아질 거라고.. 어딜 가든지 아이들이 정말로 많다고.. 내가 느끼는 것은 어딜가든 학교 건물이 정말로 많다는 것이였다. 감비아에서는 그래도 초등 교육까지는 아주 싸게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중 고등 교육부터는 돈이 꾀나 들기 때문에 자녀가 많은 집안에서는 모든 아이들을 교육 시키기는 힘들다. 게다가 감비아에서는 university 와 college 가 각각 한개씩 있다고 하니..^^a
홍 선교사님이 하고 계신 사역중에 하나는 감비아 아이들에게 기독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내가 묶고 있는 곳은 홍 선교사님 댁의 뒤에 있는 compound(방이 여러체 있는 집이라 생각하면 됨) 인데 이 곳에서 초등학교 부터 고등학생 까지의 다양한 나이대의 감비아 친구들이 15명 이상 거주하면서 교육 받고 있다. 여러 부모님들의 허락 하에 이 곳에서 그들은 이 곳에서 생활하기도 하고 아니면 학교 다녀와서 아침 저녁으로 이곳에 와서 예배드리고 같이 생활하고 있는데.. 선교사님은 생활 잘 하는 아니들에게 그들의 학비를 대주시거나 끼니를 해결해 주시기도 한다. 물론 말 안듣고 말썽을 피우면 엄격히 벌두 주시기 때문에 아이들은 정말로 선한 영향을 받고 잘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인상 적인 것은 특별히 몇몇 아이들은 정말로 하나님과의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꼼보라는 의사가 꿈인 고3정도인 친구가 있는데 하나님앞에 정말로 신실한 것을 느꼈다 나 처음 만났을 때도 이제 건강 괜찮냐고 물어보고 또 감비아에서 잘 지낼수 있도록 기도도 해주었는데 정말 감동받았었다
이 곳은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 확성기로 경전읽는 것과 기도 하는 것을 들을 수가 있다 우리 크리스쳔에게는 시끄러운 것도 시끄러운 것이지만 영적으로 많이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새벽 4시부터 하니까.. 나는 밤에 자다가 몇번을 깨곤 한다 -_-a 재밌는 것은 우리 학생들 중에 마을에 이슬람교로 치면 목사님쯤 되는 사람의 아들 모하메드라는 애가 있는데 아침에 경전을 가끔 읽는 친구이기도 하다 당연히 게 부모님이 그 친구가 여기와서 교육 받는 거를 처음엔 엄청 반대하다가 .. 이 녀석이 처음엔 엄청나게 말썽꾸러기에다가 말을 안들었는데 이 곳에와서 많이 변화가 되니까 게내 부모님들이 나서서 여기를 보낸다고 하신다 하하 지금도 내 옆에서 예영이 누나한테 혼나고 있다 ㅎㅎ
우리나라의 교육열... 급속도로 발전했던 이유.. 등등을 생각해보며.. 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너무 길어 질 것 같아 생략한다
3. 광민형과의 만남 -한국 남자가 필요해.. & 페리를 타고 -감비아 체험기
광민형은 이 곳에 온 지 반년 정도 되었다. 선교사님이 선교대회에 참여하게 되어서 예정보다 조금 일찍인 다다음주에 한국에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한다 형은 내가 와서 너무나 기뻐 하신다 왜냐하면 터놓고 한국 스포츠와 남자들끼리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다고 하시기 때문이다 어제도 2002 한국 월드컵과 마이클 조던에 대해서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었지.. 정말로 우리 삶에서.. 마음이 통하는 동성 친구는 꼭 필요한 것 같다
여기에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정말로 배울 점이 많은 형인 것 같다. 이런 만남에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어제는 오후에는 광민형이 계속 타보고 싶어하던 페리를 타러 갔다. 형은 내가 없었으면 계속 일만 했을 텐데 선교사님이 손님이 온거라 보내주시는 거라고 계속 고마워 한다.
역시나 나에게 잘 대접해주시는 선교사님의 마음이 너무 감사하다. 광민형은 완전히 감비아 현지인이 다 되신것 같다 하하 페리에 아시아 사람이라고는 우리 둘 그리고 백인 3명 그리고 전부 피부색이 검은 사람들.. 아무리 시에라리온에서 현지 택시까지 타본 경험에 3개월의 시간이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 무섭기는 하다. 이상한 냄새도 많이 나고.. 좁은 배에 사람이 찡겨찡겨 타는 모습이란..
그래도 재미는 있다. 아프리카 영어긴 하지만 사람들과 대충은 의사소통이 되고 우리를 보면 신기한지 쳐다보면서 씩 웃어주기 때문이다 느끼는 거지만 .. 감비아 사람들은 대체로 호의적인 것 같다. 머쉬쉽 항해할 때랑은 많이 달랐지만 역시~ 360도 바다를 보면서 항해하는 기분은 정말 최고다! 태양에 비추는 대서양의 아름다운 색깔이란.. 이런 바다같이 넓은 마음을 품으며 살아야 겠다고 생각해본다
페리에 내려 도착한 바라라는 지역에서는 감비아 아이스크림인 원조라 불리는 체리맛과 같은 얼음과자도 사먹고 (아 패리에 내렸을때 군복 입은 넘이 패스포트 보여달라며 위협을 가했으나 광민형의 재치로 지나쳤다.. 역시 돈달라고 하는 거겠지?? -_-a) 레스토랑(?)에서 20달라시 하는 (30달라시가 1 달러~) 감비아 음식도 먹었는데 광민형은 반줄에서는 15달라시인데 왜게 비싸냐며 흥정을 아주 잘 하셨다 하하 기름에 매운 양념을 넣고 쌀을 볶은데다가 녹색의 시큼한 양념과 카사바라는 아프리카 고구마 같은 것이 곁들여 나왔는데 나는 맛나게 아주 잘 먹었다 히히 그리고 세라쿤다라는 감바아 최대의 시장을 방문했는데 많이 재미있었다. 여러가지 신발 구경도 하고 그리고 아프리카 사막 지역의 모리테니아라는 나라의 사람들도 만났는데 아랍계 처럼 생겨서 눈에 확 띄었다. 광민형 친구라면서 정말로 친절하게 우리를 대해줬다. 내가 거기가 어딘지 모른다고 하니까 막 따라오라더니 자기 나라 위치를 지도로 설명하고 수도도 보여주면서 그랬다. 히힛 아프리카에 대해서 더욱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때는 예영누나 선물 전다고 입술에 바르는 쳅스틱도 샀는데 흥정하는게 또 진짜 재밌었다. 하나 산다고 하니까 30을 불러서 광민형이 15를 요구하자 절대 안된다고 20에 주고 사기로 했는데 25달라시 주고 하나 더 집은 다음에 2개에 25를 부르니까 머리속에 계산하는것 같더니만 갑자기 흐뭇한 표정을 짓는게 아닌가? 허허 이넘이 계산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첨부터 바가지를 많이 쒸우려 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머 어쨌든 우리도 만족하고 돌아섰다 2달라시 하는 버스와 4달라시 하는 합승 택시도 타고 왔는데 이것도 재미 있었다. 차를 타보면 대체 이게 어떻게 달리는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운전석에 보면 온갖 장치들은 다 깨져있고 먼지가 끼여 있고 백밀러 거울 또한 깨져 있으며 기어도 불안하게 달랑달랑 거리고.. 흐흐.. 광민형도 처음에 택시 가격을 몰라서 4달리시면 집에 오는 거를 합승 택시가 아니라는 이유로 150달라시를 내고 왔었단다. 완전 바가지다 -_-a 역시 여행다닐 때에는 정보가 생명인 것 같다.
4. 맛난 저녁 식사 내가 쏜다!
토요일 저녁.. 내일이면 그립던 친구들을 만나겠지~ 오늘 친구들이 있는 소마 지역에서 사역하시는 미원 누나와 선교사님들도 만났서 친구들 이야기도 나누고^^
홍 선교사님 댁에서 신세만 졌으므로 오늘 저녁을 쏘기로 결정했다 유럽에서 나 혼자 식사 두끼 먹을 정도면 이 곳에서는 선교사님들과 형 누나 5명이서 배터지게 먹을 수 있으니 ㅎㅎ
40$를 바꾸니 거금 1200 달라시~~~!!! 감비아 전통 식사 한끼가 15달라시이니.. 얼마나 큰 돈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한꺼번에 올립니다.. 여행중에 상황에 맞는 사진 하나하나 손 볼 시간이 없네요...
건축현장1
개미집과 나
감비아의 흑먼지..
이슬람 사원(새벽마다 힘들었다..)
자전거 잘못타면 모래에 빠져서 넘어집니다...
학교 벽화
건축 담당자 아저씨 아들 딸 진짜 귀엽당
페리를 타고 세라 쿤다로..
축구 경기당..
홍 선교사님 컴파운드 아이들과 함께..
나랑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신실하게 보이는 이브 꼼보^^
똘똘이 알파랑 이슬람 목사 아들인 모하메드.. 그리고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개 뽀삐
감비아 게임방..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ㅋㅋ
게임을 누르니.. 지레찾기가 나왔고 오피스를 누르니 메모장이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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