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3 셋째날입니다!!!!

유령마을

유령마을... 정말 유령같이 못찾겠음...  잘못했으면 시리아 국경까지 갈뻔~ UN 군이 도와줌..

헬몰산



헬몬산(Mt. Hermon)

헬몬산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2814m이다. 헬몬산의 융기로 인해 주변에 계속이나 분지등의 낮은 지역을 동반하게 되었다. 북쪽의 안티레바논 산지의 한 지맥과 이어지며 30km의 길이로 년준 1500mm의 강우량을 가진다. 대부분의 눈으로 된 강우량은 여름까지 서서히 녹아 남으로 요단, 북의 리타니, 동의 다메섹으로 흐른다.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를 이루었으며(신 3:8;4:48, 수 11:17, 삿 3:3) 주변의 우거진 숲과 산기슭의 강 근원들, 그리고 눈으로 덮여있는 정상의 모습들로 고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적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Nimrod Fortress


바니아스 (Banias, 가이사랴 빌립보)

고대 희랍신화에 나오는 삼림의 신 '판'을 섬기는 신전이 있는 곳이기도 한 이곳은 국립공원이 있다. 헤롯은 흰대리석의 신전을 지어 아우구스 황제에게 바쳤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여기를 오셔서 제자들을 향해 자신에 대해 물으셨을 때 베드로의 유명한 신앙고백인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을 했던 곳이다(마 16:13-20).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반석으로 삼으시고 교회를 세우실 것을 말씀하신 곳으로 베드로의 신앙고백위에 교회의 기초가 잡힌 곳이 바로 이곳이다. 현재는 기독교 유적은 존재하지 않고 판신의 신전유적만 남아있다.

Tel Dan


단 (Dan, 텔단)

헬몬산 아래 큰샘들이 터져 단강이 시작되는 광활하고 비옥한 평지 가운데 위치한다. 요단강 근원 중 하나이다. 단은 히브리어로 '심판'이라는 뜻이다(창 49:16). 현재 레바논 국경에 가까우며 구약시대에도 북쪽의 끝지역을 나타내었다(삿 21:1, 삼상 3:20, 삼하 3:10;17:11;24:2,15) 텔단은 북 요단강의 수원인 세네, 바니야스와 함께 중요한 수원중 하나로 요단강의 이름도 단에서부터 흐른다는 의미이다. 주전2500년경 큰도시가 있었고 성경엔 창 14:14에 처음 언급되며 단의 원래이름은 레센(수 19:47), 또는 라이스(삿 18:29)였다. 이스라엘의 단지파가 라이스를 점령하고 단이라 불렀다(삿 18:27-29). 북왕국의 첫왕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둔곳(왕상 12:25-32)이며 성벽과 성문도 쌓은곳이다. 이때 건축한 야외의 큰 제단의 일부가 현재 남아있다. 이 제단은 후에 아합왕과 여로보암 2세때 보수되었고 로마시대까지 제사지내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적이 단에서 쳐 올 것을 예언했고(렘 8:16) 야곱의 말 중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창 49:126)말중 '심판의 언덕'이라는 뜻의 아랍어 텔엘콰디라 부르기도 한다.

삿18:1-30 단지파의 이동, 왕상12:25-33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삿20:1, 삼하24:2, 왕상5:5 이스라엘 북방 경계, 왕상 15:16-22 아람왕 벤하닷의 침입

Hazol


하솔 (Hazol)

갈릴리 바다에서 정북으로 약 20km 지점에 있는 평지보다 약 40m 높은 언덕이고 넓이가 길이 1km, 폭 700m 정도의 넓은 언덕으로 남쪽을 윗성, 북쪽을 아랫성이라 한다. 주전 3000년경부터 도시가 21회에 걸쳐 섰으며 가나안 시대에는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였다. 주전 13세기 중엽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을 정복할 때 이곳을 점령하고 불살랐다(수 11:13).

이스라엘은 윗성을 사용했고 성경상으로도 윗쪽이 주로 언급되었다(삿 4). 솔로몬의 윗성성문은 아직 남아있으며 구조가 므깃도나 게셀의 것과 같다. 오므리 왕 시대의 저장실과 물길등을 만들어 더욱 견고한 성을 지었으나 100년 후 여로보암 2세때의 지진(암 1:1)으로 파괴되었고 앗수르에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완전히 파괴되었다(왕하 18:10-12). 하솔키부츠에 하솔박물관이 전시되어 있다. 갈릴리 지역 가장 강한 성읍. 수 11:1-15 여호수아의 정복, 삿 4:1-5:31 하솔왕 야빈(군대장관 시스라)과 여선지 드보라간의 전쟁, 왕상 9:15-22 솔로몬의 요새화, 왕하 15:27-29 앗수르왕에 의해 함락.

0804 넷째날입니다!!!!

Akko


악고(Akko)

지중해 북쪽 해변도시로 십자군 시대의 성벽과 건축물 일부가 남아있고 그 중 지하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아셀 지파가 악고의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하고 산 기사가 있다(삿 1:31). 주전 4세기 알렉산더에 점령당했고, 두로, 시돈과 함께 중요 군사·상업적 항구도시로 발전했다.

애굽의 톨레미 왕조에 점령되어 바울이 두로를 떠나 돌레마이에서 하루를 지내다 가이사랴의 빌립의 집으로 떠난(행 21:7) 성경기사에서 보듯 주후 1세기까지 돌레마로 불리웠다. 외국인들의 전도지로 주후 190년경 최초의 주교인 크라루스가 여기서 나왔다. 주후 7세기경 아랍시대엔 팔레스타인 지역의 가장 중요한 항구로 사용되었고 1104년 십자군의 통치를 받다가 1187년 회교인 살라딘왕에 의해 전국이 점령당했다가 악고지역만 1191년 십자군에 의해 다시 회복되었다. 그후 몽고, 애굽, 사이프러스등의 침입을 받았고 결국 1291년에 완전멸망 당했다.

아셀지파에게 분배되나 가나안 사람들을 쫒아내지 못한다(삿 1:31). 돌레마이로 불리지던 기원전,후에 사도 바울이 머물렀다(행 21:7). 이곳에는 십자군시대의 성 유적과 교회의 유적이 지하도시에 있다. 나폴레옹이 1799년 성지탈환을 위해 왔다가 60일간 통치하고 전쟁에 져서 돌아간다.

Rosh Hanika


Zioppori


Nazareth






나사렛(Nazareth)

예수 탄생의 예고, 나사렛에 돌아온 아기 예수 눅2:39, 예수의 소년시절 눅2:51, 예수를 나사렛 사람이라 부름 마2:22-23, 나사렛 회당 눅4:15-30, 유다인의 왕 나사렛 예수 요19:19

1. 수태교지교회

1955년에 짓기 시작해 1969년 완성된 이 교회는 그 자리에 세워진 다섯 번째 교회이다. 마리아 집터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명으로 처음 교회가 세워졌으나 성지의 주인이 바뀜에 따라 파괴되고 복구되는 역사가 다섯 번이나 반복된 것이다. 성지의 교회중 가장 크며 아름다운 교회로 베이지색 건물에 옅은 벽돌색 돌을 줄무늬가 되도록 배열했다.

교회 전면에 가브리엘 천사가 수태소식을 전해주는 장면과 예수의 전기가 조각되어 있다. 예수탄생과 관련된 성경말씀도 라틴어로 음각되엉 lT다. 이 교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뽀족탑 형태의 지붕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져서 정점에서 만나도록 설계된 모양으로 교회안에서 올려다보면 백합꽃을 거꾸로 세워 놓은것같아 하늘에서 백합꽃이 내려오는 느낌을 받는다. 세상에 내려오신 예수를 상징하는 것이다.

교회밖의 벽면을 가득 채우는 성화들이 있는데 여러나라의 토착화된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의 모습을 그렸다. 각 나라에서 직접 보내온 모습들이 전시되어 나라와 민족을 초월한 구주라는 진리의 감명을 준다. 나사렛의 아랍인들은 대부분이 크리스천이다.

2. 요셉교회

1914년 요셉의 집터위에 세운 교회로 수태교지 교회에서 약 100m 떨어져 있다. 주님당시 나사렛은 겨우 100-150명 정도의 작은 동네로 작은 동네여서 마리아와 요셉의 집은 가까웠던 것이다. 지하에 요셉의 일터도 있으나 확실한 근거가 부족하다. 여기엔 사방 2m크기의 세례받는 곳도 있다.

우리가 목수로 번역하는 테크론이라는 헬라어 단어가 단지 목수만 아니라 집짓는 모든일들을 지칭하는 의미이다. 카톨릭에선 요셉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라 말한다.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이 지켜보는데 임종했기 때문이다.

Bet She'arim


베트 쉐아림 (Bet Shearim)

2성전시대 말기 언급되기 시작하여 헤롯 아그립파 1세의 딸이자 아그립파 2세의 여동생인 베레니체 공주의 영토였고 도시를 성벽으로 둘러싸은 훌륭한 성채도시 였다고 한다. 바르 코흐바가 이끄는 유대인 봉기 이후 135년경 유다 자손인 나시가 중요한 유대 철학 및 종교적 중심지로 전환시켰다.

베트 쉐아림이란 '100개의 문을 가진 집'이란 뜻으로 나시는 이곳에다 산헤드린을 설치했고 미쉬나의 최종편을 완결했다. 이렇게 유대인의 성지가 된 베트 쉐아림은 3세기 무렵에는 성지에 묻히려는 유대인이 몰려들어 때 아닌 무덤 지역으로 변했고 특히 팔미라, 베이루트, 시돈같은 추앙받는 랍비들이 다투어 자신들의 영생의 집을 베트 쉐아림으로 정하는 바람에 열기가 가열되었다.

351년에 유대인 봉기가 다시 발생하자 로마의 갈루스 케사르는 팔레스타인 땅의 모든 유대인 마을을 파괴하고 싹쓸이 작전을 전개한다. 이때 베트 쉐아림도 철저하게 파괴되지만 간신히 작은 유대인 마을로 맥을 이어오다가 이슬람 제국의 침입때 완전히 멸망했다. 로마와 이슬람의 침범때 성스런 무덤들이 대파되었지만 다행히도 지하 석굴묘여서 페허 이후에 흙과 돌이 뒤덮여 더 이상 파괴를 면한 상태여서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전해올 수 있었다. 1936-1940년까지 실시된 발굴작업을 통해 옛 산헤드린 땅 베트 쉐아림의 유적이 다시 드러나게 되었다.

- 카타쿰베 (Catcombs) : 텔 베트 쉐아림 북서쪽에 위치한 카타쿰베는 유대인 성지에 묻히고자 했던 열기를 대변해 주는 지하무덤군이다 5에이커의 지하에는 연대를 달리하는 많은 무덤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로마스타일의 지하 카타쿰베 스타일이며 화려하다.

- 시나고구 : 지하무덤 윗쪽 도로에 위치한 15 X 35m 크기의 직사각형 시나고구 터는 3세기경의 것이며 역시 지성소 부분이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터를 향한다. 1938-1939년의 발굴작업에서 드러난 시나고구는 로마의 갈루스 케사르가 공격해 왔을 때 파괴된 것으로 보여진다. 유적에는 단 1자의 히브리어 문양과 15자의 그리스어 문양이 새겨져 있다.

갈멜산


무흐라카

무흐라카는 갈멜산 줄기 중 한 봉우리로 엘리야가 단신으로 바알 종교와 대결하여 승리한 곳이다. 하이파에서 45분 거리로 '불의 장소', '불이 내려온 곳'이라는 뜻으로 산 위에는 엘리야의 석상이 세워져있다. 석상 받침대에는 라틴어, 아랍어, 히브리어 3개 언어로 . "그 때 예언자 엘리야가 불같이 일어났으니, 그의 말씀은 횃불같이 타올랐다"라는 외경의 엘리야에 관계된 구절이 새겨져 있다. 엘리야는 여기서 승리한 후 산 밑의 기손강에서 450명의 바알신 추종자들을 처형한다.

아셀지파에 속함 수19:26, 갈멜산과 엘리야 왕상18장, 기름진 밭 사10:18, 16:10, 아름다운 처소 아7:5,힘을 상징함 렘46:18.

Hiafa



하이파(Haifa)

북부 이스라엘의 중심지며 항구의 현대도시이다. AD 3세기경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두르즈, 회교, 기독교, 바하이교 등의 신자들이 많이 있다. 이곳으로 엘리야 450명의 바알 선지자를 죽인 기손강이 흐른다. 갈멜산 언덕쪽에 있는 바하이사원이다. 그리고 서쪽 바다가 보이는 언덕 아래에 스텔라 마리아 수도원과 그 옆에 엘리야 동굴이 있다.

0805 다섯째날입니다!!!!

엘리야동굴


가이사랴




카이세리아 (Caesaria, 가이사랴)

가이사랴가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기원전 331년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을 정복했을 때이다. 당시 이곳에는 페니키아인이 세운 작은 항만이 있었다. 로마의 폼페이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북상하고 기원전 63년 가이사랴는 로마땅이 된다. 폼페이는 하스모니안 왕국의 왕을 젖혀놓고 헤롯에게 통치권을 부여한다. 당시 폼페이와 시저는 앙숙간이었고 시저는 장인인 폼페이를 살해하고 권력을 잡는다. 안토니우스는 시저의 양자로서 권력을 계승했지만 시저의 유언상의 양자는 마케도니아에 있는 옥타비아누스였다. 두 사람의 적법한 양자 판결과 권력 다툼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고,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리가 자결한 후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최초의 황제로 등극하고 아우구수투스라 개명한다. 시저의 적법한 후계자가 되기위해 카이세르 아우구스투스(가이사 아구스도, 시저 아구스도)로 개명하고 정식으로 헤롯을 유대왕으로 봉하고 팔레스타인 땅 전부를 다스리게 한다. 이에 헤롯은 기원전 22년에서 12년에 걸쳐 스트라토나스 피르고스에 멋진 항구도시를 만들고 '카이세리아(가이사랴, 항구의 도시)로 명하고 황제의 은총에 보답한다.

로마 통치시절 황제를 찬양하는 두 도시가 바로 가이사랴와 신전을 지어 바쳤던 가이사랴 빌립보 이 두군데이다. 헤롯은 당시 항만이라는 개념을 초월하여 현대 항구의 기원인 인공항만을 세계최초로 이곳에 건설했다. 야외극장, 대전차 경주장, 정의의 정원등을 건설하고 담수를 멀리서부터 수로를 연결하여 끌어왔다. 성벽을 반원으로 둘러쌓아 적으로부터의 안전도 도모한다. 가이사랴에서 발생한 신약성서 사건은 빌립과 사울과 베드로의 이야기인 행 8:40, 9:28-30, 10장등이 있다.

1) 로마 원형극장 : 1970년에 복구작업이 끝나 저녁이면 각종 야외 콘서트등이 개최된다. 행사일정은 텔아비브 투데이(관광객용 팜플렛)를 참조하거나 텔아비브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에 문의한다. 매표소를 지나 왼편의 정원은 석상과 각종 유물을 전시하는데 이 중에서 본디오 빌라도가 이곳 총독이었다는 내용이 새겨진 돌판이 서있다. 돌 받침대 위의 오른편 귀퉁이가 파인 네모난 돌에 라틴 문자가 새겨진 돌이다. 돌에는 '(PON)TIUSPILATU(S)'라고 적혀있는데, 괄호안의 글자는 잘려나갔다. 발굴된 잔해를 모두 결합시키면 '본디오 빌라도 유다총독이 티베리아 황제께 경의를 표하며 이 성전을 건설하여 바치다'이다.

2) 십자군 도시 : 여기엔 항구를 마주보며 십자군 시대에 지은 사도 바울 성당이 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의 길을 떠나기 위해 최초로 배를 탔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바울을 기념하여 비잔틴 제국 시절에 최초로 교회를 건설했고, 이슬람 제국 시절 교회를 파괴하고 그 터 위에 모스크를 건설했다. 십자군 시절에 다시 모스크를 파괴하고 성당을 지었다. 헤롯은 바다를 끼고 길게 뻗은 지형을 이용하여 방파제용의 바위를 쌓고 현대의 항만처럼 정식항구를 건설하여 팔레스타인의 국제항구로 이용했다.

3) 수로 : 헤롯이 카르멜산(갈멜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나할 타니님과 현재 마간 미카엘 키부츠에 속한 카바라 샘의 두 군데 주요 수원지와 연결하여 16km에 달하는 석조 수로를 통해 도시로 물을 끌어들인 곳이다.

소라 (Zora)

소렉 골짜기 북쪽 언저리 위치하며 벧세메스에서 북쪽으로 3.5km 떨어져 있다. 삼손이 태어난 소라는 에스다올(삿 13:25)과 벧세메스 중간의 길 서쪽의 산 정상이다. 소렉골짜기를 타고 내려가면 삼손이 장가든 딤나(삿 14:1)와 드릴라가 이 골짜기에서 살았다(삿 16:4).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실로에서 법궤를 가져와 에벤에셀의 전투에서 블레셋에게 빼앗긴다(삼상 4:1-11). 이 법궤가 아스돗으로 옮겨지자 하나님은 큰 재앙을 내린다(삼상 5:1-7). 그러자 아스돗에서 가드로 옮기자 그곳에도 재앙이 내리자(삼상 5:7-9), 다시 에그론으로 옮기자 그곳 사람들이 부르짖어 반대하나 있는 동안 재앙을 받고(삼상 5:10-12), 결국 '해의 집'이라는 뜻의 벧세메스로 옮겨온다(삼상 6:1-21). 블레셋에 법궤가 6개월간 머물다가 이스라엘 지경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겨와(삼상 7:1-2) 20년 이상을 있게 된다. 사울왕은 법궤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BC 2,000년전부터 사람이 살며 해신을 섬겼고 지금의 유적은 비잔틴시대의 것이 대부분이다.


라커쉬

라키쉬 (Lachisch)

사진 없음 -_-a

유다의 가장 큰 병거성이자 남쪽 쉐펠라 입구에 위치하여 유다 산지를 들어가기 위해서 꼭 거쳐야 하는 성읍이다. 기원전 1220년 여호와의 후원으로 태양도 달도 멈추게 했던 기브온 전투 끝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민족은 라기스 왕 야무스를 교수형에 처하고 라기스 주민을 말살한 뒤 이스라엘 땅으로 삼았다(수 10:5-33). 조직적인 전략과 막강한 병력을 자랑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이틀간의 전투로 간신히 함락할 정도로 막강한 도시였을 것으로 성서 고고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으나 발굴작업 결과 당시 라기스에는 방어 성벽이 없었다고 한다. 유다지파의 기업이었지만(수 15:39) 이후 200년동안 폐허 상태였다. 수 10:1-5 아모리 다섯왕중 하나, 대하 11:5-12 르호보암의 요새성, 대하 25:25-28 아마샤왕은 반역을 피해 이곳에 도망했으나 죽음, 왕하 18:13-17 앗수르의 침입, 렘 34:7 산헤립 침공시 남은 두성읍(아세가, 라기스)


베트 구브린 (Bet Guvrin)

- 마레사 도시 유적 : 구약성서의 마레사 유적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민족이 제비를 뽑아 땅을 정할 때 유다지파의 땅이 되었으며(수 15:44) 남북 왕국 분리 후 남왕국의 르호보암에 의해 라기스와 함께 성채 도시가 건설되었다(대하 11:11). 유다왕국의 아사왕 시절 구스(에티오피아)사람 세라가 쳐들어와 마레사에 진을 쳤을 때, 여호와의 힘으로 그들을 물리쳤다(대하 14:9-11). 여호사밧은 악을 행하던 이스라엘왕 아하시야와 같이 배를 만들어 다시스로 가려할 때 마레사의 예언자 엘리에셀은 '왕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는 고로 여호와께서 왕의 지은 것을 파하시리라'라고 예언하고 배는 난파된다(대하 20:35-37). 마레사는 기원전 701년 앗수르의 산헤립에게 함락되고, 기원전 587년 바빌론의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한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간 이후 마레사는 더욱 활기찬 도시로 변하는데 이집트로 보낼 유대인 노예를 매매하는 시장이 섰기 때문이다. 마레사는 점차 번성하여 200년 로마 통치시절 세프티무스 세베루스에 의해 자유 무역 도시로 지정되었다. 현재의 이름 텔 산다한나는 12세기 십자군이 성체에 성 안나 교회를 건설한 이후부터 이슬람인에 의해 이렇게 불렸다. 주차장 매표소에서 지도를 받으면 초록색 길은 유적이고 노란색길은 수백개의 동굴 중 공개되는 동굴이다.

1) 비둘기 동굴 : 동굴의 안벽엔 수많은 작은 홈이 파져있는데 이것은 마레사는 60여개의 동굴에다 수만마리의 비둘기를 집단 사육하던 도시로 흔적이 남은 것이다. 기원전 3세기 경에 판 동굴이다.

2) 목욕탕 동굴 : 10여개의 동굴이 있는데 거대한 바위산을 파서 대중탕을 만들고 저수지와 수로를 연결하여 물을 공급했다. 현재 온수와 냉수를 공급하던 수로와 욕탕으로 들어가는 계단, 두 개의 작은 휴게실이 남아있다.

3) 가옥 동굴 : 알렉산더 대왕 시절부터 만들어졌으며 기원전 113년 하스모니안 왕국당시 제조된 동전들이 발견되었다.

4) 저수지 동굴 : 알렉산더 시절에 판 합리적인 구조로 물을 조달하기 위해 지하로 깊게 파서 저장했고 물이 줄어들때도 갈 수 있도록 긴 계단이 지하까지 연결되어있다.

5) 기름집 동굴 : 역시 알렉산더 시절에 판 넓고 밝은 장소로 멧돌 모양의 바위가 올리브 씨앗을 빻아 기름을 짜던 기름틀이다. 올리브 오일은 주요 소득원이었고, 15에이커에 달하는 주변 계곡에 올리브 나무를 심어 연간 9톤의 올리브 기름을 짜서 공급했다.

6) 종 동굴 : 영화 람보 3를 촬영한 곳으로 거대한 종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드뎌 도착!

저 차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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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시: [2004]0801-0805
여행 국가: Israel
여행 도시: 성지 곳곳
홈페이지 :
http://hope.ne.kr/www/bbs/view.php?id=trip_board&no=43

Posted by 어복민
,

시작합니다~


1. 주제 : 5일간의 이스라엘 북부 성지 여행
2. 참가자

이름 강사명 / 주특기 작전참모 / 성격 부지런 / 좌우명 빡세게 돌아서 하나라도 더보자 / 하고픈말 헤메지만 안았어도 더 봤을 텐데..

이름 김선혁 / 주특기 운전병 / 성격 듬직 / 좌우명 금강산도 식후경 / 하고픈말 외국서 운전하게 될 줄이야

이름 장한솔 / 주특기 취사병 / 성격 밝음 / 좌우명 요리엔 양파가 필요하다 / 하고픈말 5일동안 들은 오른쪽 왼쪽이 4년간 이스라엘 살며 들은 것보다 많다 & 사진엔 연출이 필요하다..

이름 어복민 / 주특기 물주 / 성격 잠자기 / 좌우명 성지를 보여달라! / 하고픈말 수고하셨습니다.. & 아 홈피는 언제 정리하나 ㅠㅜ

3. 여행 코스
8월 1일
베트 샨 (Beit Shean,벧산) -> Bet Alpha -> 다볼산(늦게 가서 결코 다 보지 못함) -> 야영장 텐트치고 취침
8월 2일
Kursi -> Ganhashlosha -> Ein Harod -> Belvoir -> Yardenit -> Tabgha -> Capharnaum -> Korazim -> 팔복교회 -> 벳세다 지역 -> Tiberias -> 야영장 텐트
8월 3일
유령마을(시리아국경지역) ->헬몬산 ->Nimrod -> Banias ->Tel Dan -> Hazol -> Akko -> 호스텔..~
8월 4일
Akko -> Rosh Hanika -> Zippori -> Nazarath ->Bet She'arim -> 갈멜산 -> 헤변서 야영
8월 5일
Haifa -> 엘리야 동굴 -> 카이사랴 -> 아스돗 -> 라키쉬 -> Bet Guvrin

4. 사건 사고
길을 빈번히 잃고 헤메임.. 이게 여행온건지 헤메러 온건지..
3일차에 차에 바퀴 바람빠짐.. 빵꾸났음.. 때우는데 큰 돈이 ㅠㅜ
마지막날 주차시간 위반으로 100세켈 벌금 물었음 흑흑
예산 무지 초과함 ㅠㅜ
national park 뽕을 뽑음... 5일간 14군데 방문 헉...

†주님! 이제 미지의 세계로 향합니다. 믿음의 세계가 그러하듯이 이제 마음을 정하고 알지 못하는 그곳으로 떠나고자 합니다. 그러나 무슨 일을 만날지라도 주님의 인도와 도우심이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한국인으로서 당당하게 하옵소서.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것을 보게 하시며 새로운 일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아멘 - (예루살렘교회 김진해 목사)

0801 첫날입니다!!!!

베트 샨 (Beit Shean,벧산)


베트 샨 (Beit Shean,벧산)

기원전 1200년경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제비 뽑아 땅을 정할 때 므낫세 지파땅에 '벧스안'이 포함되었지만(여 17:11) 여호수아가 죽은 후 므낫세 사람들이 벧스안 주민을 평정하지 못해 그들과 함께 거주했다(삿 1:27). 기원전 1010년, 원주민인 블레셋(팔레스타인)과 사울의 전투에서 사울이 패해 길보아 산(베트 샨 서쪽의 남북으로 길게 뻗은 산)에서 아들과 함께 자결하자 블레셋족은 그들의 목을 베어 시체를 '벧산'성벽에 못박았고(삼상 31:10) 다윗이 '벳산'에서 사울과 요나단의 뼈를 거둬주었다(삼하 21:12). 솔로몬 사후 연합왕국이 분열된 기원전 724년에는 북왕국의 땅이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 시절에는 스카이토폴리스라고 불리웠고 그후 같은 헬레니즘 왕국인 시리아 셀루키드 왕조의 다오도키의 소유가 되었다. 그리고 마카비 봉기 성공으로 창설된 유대 하스모니안 왕국의 존 히르카누스 왕 시절인 기원전 107년에 유대 왕국의 땅이되어 헤롯 대왕 시절까지 번성기를 누리지만 기원전 63년 로마의 폼페이 장군에 의해 함락되고 4세기경에는 로마의 팔레스타인 세쿤다 정복지의 수도가 되어 극장등의 거대한 건조물이 건축되는 등 번영을 맞는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이후에는 기독교인과 수도승이 몰려들어 수도원과 교회를 세우는 등 기독교 도시로 변모하자 상대적으로 유대인 마을은 침체기에 들어갔다 636susdpo는 이슬람 제국에게 함락당하고 이후 베이샨이라 불리웠다. 십자군 시절에 다시 기독교 도시로 전환되어 교회와 성채가 건립되지만 얼마되지 못해 이슬람 맹장 살라딘의 공격을 받고 이후 그저 작은 유대인 마을로 전락했다.

- 신전들 : 베트샨 유적에는 네 개의 신전이 남아있다. 제 1신전은 기원전 1411년 이집트 파라오 아메노피스 3세 시절의 것으로 순수한 이집트 건축양식의 신전이다. 제 2신전은 이집트 신화의 세트신(사막의 신이며 사악함의 상징)을 모시는 신전으로 1303-129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3번째 신전역시 세트신을 모시는 신전으로 파라오 람세스 1세때인 기원전 1292년에 건설되었다. 제 4신전은 기원전 1000년 파라오 람세스 3세에 의해 건설된 아쉬타로트 여신을 모시는 신전이다. 발굴된 신전의 많은 부분이 예루살렘의 록펠러 박물관으로 이송되었다.

벳 알파 (Bet Alpha 국립공원)

다볼산

음.. 이름은 다 볼산인데.. 문닫아서 하나도 못보고 ㅠㅜ 성경적 의의만 되세겨 봅니다

다볼산(Mt. Tavor, 588m)

종교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이었다. 자연적 조건자체가 '의의제사'를 드리기 위한 예배 중심지로 사용하기에 적합했다고 한다. 멀리서 보이는 산은 검고 둥글게 솟아있는 모습이며 산주위 계곡들로부터 동떨어져 고립된채 경외심과 위엄을 자아낸 산이었다. 스블론과 잇사갈을 향한 모세의 기도속에 나타난 산으로도 알려져있다(신 33:18-19).

신약때는 예수님의 변화산으로 알려졌으나 신약성서에는 어떤 산인지 이름은 없다. 유세비우스는 헤르몬산이나 다볼산 중 하나라 이야기한다. 348년 예루살렘의 주교 시릴의 주장과 제롬들 교회지도자들의 지지로 다볼산이 변화산으로 알려진다. 다볼산과 헤르몬산은 시 89:12에 단한번 함께 나온다. 순례자들의 기록에 따르면 비잔틴 시대에 다볼산엔 초막 셋(마 17:4)을 상징하는 교회 3개가 있었다. 614년 페르시아에 의해 파괴된 후 십자군때 다시 세워지나 살라딘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다(1187).

다볼산의 정상에선 바람문이라는 돌문이 있는데 이 돌문은 13세기에 아랍왕이 이곳에 있던 십자군 교회를 헐고 요새를 지을 때 만든 정문으로 1897년에 다시 손질한 것이다. 현재 정상의 교회중 동방정교회 소속의 엘리야교회는 1911년에 세워졌으며 그 구역내에는 멜기세덱의 동굴이 있는데 이 동굴은 멜기세덱이 다메섹 좌편의 호바에 가서 롯을 구해오는 아브라함을 영접한곳(창 14:13-20)이라고 전해진다.

로마 카톨릭 소속교회는 1924에 지어진 것으로 모세와 엘리야를 위한 기소도가 입구에 있으며 2층 제단으로 윗제단엔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모습이, 아래정면은 두 공작이 마주보는 색유리이고, 양 옆에는 흰옷을 입은 천사들이 6명씩 모자이크 되어있다. 이즈르엘 평야와 모레산, 길보아산, 사마리아 산지, 나사렛이 있는 산과 갈멜산, 높은 갈릴리의 산등을 볼 수 있다.

드보라와 바락의 승전 삿4:5-16,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 마17:1-9, 막9:2-8, 눅9:28-36, 악령에 사로잡힌 아이와 예수님 눅9:37-43.

0802 둘째날입니다!!!!

Kursi national park


거라사 (현재명은Kursi)

거라사에는 비잔틴시대의 교회 유적이 있으며 이곳에서 주님은 군대귀신 들린 자를 고쳐 주신다(막5:1-16).

Gan Hashlosha

여기는 3단 수영장이 있었는데.. 수영하느라 사진 찍는걸 깜빡 했네요 -_-a  복민이는 터키에서 갈고 닦은 수영실력을 발휘~ 깊은 곳까지 .. ㅋㅋ

Ein Harod
이 곳은 사사기 7장의 기드온과 3백 용사의 우물이 있는 곳입니다^^

일당백 용사들..  즉 3백 용사들.. 하하하!


Belvoir

벨보아(Belvoir), 코크하브 야르덴(Kokhav Ha Yarden)

티베리아 남쪽 베트 tis 가는 길의 계곡에 위치한, 십자군 시대의 성채가 있는 곳으로 정상에서는 이스르엘 평야와 요르단 계곡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날씨가 맑은 때는 북쪽의 헬몬 산과 남쪽의 사해까지 보인다고 한다. 1168년 최초로 벨로스 일가가 이땅에 작은 성채를 지어 도시를 형성하려다 실패하고 십자군 기다산에 팔았다. 몇 년 뒤 기사들이 고대 페르시아와 비잔틴 성채유적에 새로운 성채를 건설한 후 벨보아라고 불렀다.

벨보아란 '장엄한 경관'이란 뜻으로 벨보아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빼어나기 때문이다. 아랍 사람들은 이곳을 코퀘트(Coquet)라고 부르는데 인근에 남은 작은 마을의 히브리어 이름을 아랍화 한 카우캅 엘 하와에서 유래되었다. 1187년 십자군을 몰아낸 살라딘은 이 성채를 함락시키지 못했지만 자연적으로 1189년 이슬람인의 손에 떨어졌다. 1241년 십자군 시절 이집트 통치자와 십자군의 협약에 의해 성채를 남겨 두었지만 다마스커스의 통치자는 완전 파괴를 명했다.

19세기 초에 들어 옛 성채 유적위에 아랍 마을 카우캅 엘 하와가 새로 형성되었고 1966-67년에 걸쳐 발굴작업이 완성되었다. 옛 성채 내에는 시나고구, 기독교 교회, 집터등이 있으며 이곳에서 발굴된 많은 유물은 예루살렘 내의 이스라엘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Yardenit
이 곳은 마태복음 3장의 예수님이 세례 받으셨던 곳입니다


금연 표시가 조금^^;;

타브가(Tabgha)
타브가는 일곱개의 샘이라는 뜻으로 헬라어 '헵타페곤'에서 온 아랍어로 이곳에 나는 샘들로 인해 그런 이름이 생겼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이 행해진 곳으로 알려지는데 복음서의 기록은 빈들 또는 한적한곳(마 14:15, 막 6:32,35)으로 나오는데 그 빈들이 타브가 지역이라는 것이다. 주후 4세기 경부터 생긴 전통으로 타브가에서 겨우 2km정도 떨어진 가버나움에 소수의 유대-기독교인들이 살았다는 사실이 역사성을 확인해 준다. 그래서 많은 이스라엘 기독교 서적에서 타브가를 주님의 빈들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곳에 오병이어의 교회, 베드로교회, 팔복교회가 있다.

1) 오병이어 기념교회(The Church of The Multiplication) - (08:00-11:45 14:00-17:00)


4복음서는 모두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5,000명을 먹이신 기적을 전하고 있다.(마 14:13-21, 막 6:10-44, 눅 9:10-17, 요 6:1-15). 이 사건위에 비잔틴시대에 처음 교회를 세우고 1982년에 새로 지은 교회이다. 그런데 그 기적을 행하는 장소를 기록하고 있는 책은 누가복음 뿐이다(벳새다 고을의 빈들). 뱃새다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있으나, 갈릴리 호수의 동편인 것은 확실하다. 이 교회는 주후 4세기에 갈릴리 호수의 서편에 처음 세워진 것이다.

이렇게 성서의 언급과 장소가 차이가 나는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다른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수천명을 먹인 기적을 두 번씩 적는데 누가복음은 단 한번만 기적을 전한다. 그래서 혹자는 한번은 갈릴리 호수의 서편, 즉 현재 오병이어 교회에서, 다른 한번은 호수 동편인 벳새다 고을 근처에서 기적을 행하셨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기적 후에 남은 음식을 거두어 들인 광주리가 12광주리와 7광주리인데 12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7은 가나안 7족속(신 7:1)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여 서편에선 유대인을 위해, 동편에선 이방인을 위해 기적을 일으키셨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비잔틴 시대 타브가 지역의 여러교회중 하나로 이 교회는 페르시아와 시리아의 침입때 파괴되어 1300년 정도를 잊혀졌었는데 19세기 말 독일 사람들이 이지역을 개발하다가 유적을 발견하고 발굴을 통해 1932년 비잔틴 교회를 발견한 것이다.

이교회의 제단 부분에 비잔틴 시대의 교회에 속한 아름다운 '빵과 물고기 모자이크'가 있어서 이 교회가 주님께서 수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기념하는 교회가 세워졌던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새로 지어진 현대교회는 전형적인 바실래카 형태로, 교회의 제단 아래에 높이가 20-30cm 정도가 되는 바위가 보이는데 교회의 전통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바로 이 바위에 떡과 물고기를 놓고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들어 감사하시고 또 축사하셨다고 한다.

2) 베드로교회(St. Peter's Church, The Primacy)

버나움에서 2km 떨어진 이곳에서 제자들이 고기를 잡던 이유는 이곳에 샘들이 있었기 때문으로 특히 겨울철 갈릴리 호수물이 차가워졌을 때 호수물에 비해 따뜻한 샘물로 들어가는 지점에 물고기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때가 3월 하순에서 4월초순(유월절 후)일 것이기 때문에 아직 호수물이 차가울 때이다. 물고기를 잡던곳은 호수에서 90-100m 떨어진 곳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오셔서 함께 식사를 하셨다(요 21:1-23).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라 물으신다. 베드로는 주님 내가 사랑합니다. 그러나 이 마음이 언제 변할 지 모르는 약한 자입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주님은 "내 양을 먹이라"(요 21:15)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위에 세워진 교회이며 지금의 교회는 1934년에 새로 지은 교회이다. 뜰에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안수하시는 듯한 내용의 아름다운 조각이 있다. 이교회에서 물가로 내려가는 계단 바로 앞에 5-6개의 하트 모양의 돌들이 있는데 '사도들의 보좌'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9세기 초 문서에 의함). 정확한 용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사도들을 기념하기 위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교회 안에는 '멘사 크리스티(그리스도의 식탁)'라는 이름의 큰 바위가 있는데, 이 역시 함께 식사한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다. (08:00-11:45 14:00-17:00)


3) 팔복교회(The Mount of the Beatitudes)

예수님이 저곳 에서 산상 수훈을...


오병이어 교회뒤의 언덕에 세워진 교회로 예수님께서 산상수훈(마 5-7장)을 가르치실 때 주신 팔복에 대한 교훈의 말씀을 기념하여 세웠다. 이스라엘에서 건물자체가 가장 아름다운 곳은 수태고지 교회이나 주변 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바로 팔복교회라고 할 수 있다. 이 교회는 1938년에 현재의 위치에 처음 세워졌는데 팔복을 상징하는 팔각형으로 교회가 건축되었다. 이 교회로 올라가는 도중에 '아타드'라는 가시나무들이 드문드문 보이는데, 이는 삿 9:7이하의 요담의 비유에 나오는 가시나무로 예수님의 가시면류관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2-3종류의 가시나무중 하나이다. 그래서 이 가시나무의 학명에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Ziziphus spina - christi) AD 5세기경의 교회터는 좀 더 아래의 해변에 있다. 교회 앞에서 갈릴리 호수를 바라보며 팔복찬양을 부르는 것도 한 묘미. (08:00-12:00 14:30-17:00)

Capharnaum





가버나움(Gapernaum)

가버나움은 한번도 성벽이 건축된 적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아주 중요했던 도시는 아니었던 듯하다. 그 주민들은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고기잡이, 농업, 상업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거주하신 것은 그곳이 특별한 장점을 가진곳이 아니라 첫제자들을 부르신 곳이어서라는 추측이 있다. 4세기 이후 기독교가 국교가 된 이후엔 기독교인이 다수가 되고 유대인 일부만 거주했다. 8세기 중엽 지진의 피해 후 점차 쇠퇴하여 11세기이후 완전히 버려진 마을이 되었다. 복음서에 자주 언급된 가버나움은 첫 제자(적어도 5명.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곱, 마태)를 부르신곳이고 공생애의 첫활동을 하신 곳이며 예수님의 본동네로 이야기 되기까지 할 정도로 오래 머무신 곳이다.

위치 마4:13, 막1:14-15, 눅4:14-15, 회당에서 가르치심 막1:21-28, 눅4:31-37, 예수님의 마을 마9:1,베드로 장모 열병을 고쳐주심 막1:29-34, 백부장 하인의 병을 고쳐주심 눅7:1-10, 중풍병자를 고쳐 주심 막2:11-12, 세금을 바치신 예수님 마17:24-27, 마태를 부르심 마9:9-12, 막2:13-17, 눅5:27-32, 저주 받은 도시 마11:20-24, 눅 10:13-15. (2NIS, 08:30-16:15)

·베드로 집터교회 : 전통적으로 베드로의 집으로 알려진 이곳은 1세기 말 이미 교회로 사용된 흔적을 보여 주는데 발굴에 의하면 보통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물건은 발견되지 않고 2-3세기의 기독교인들이 남겨 놓은 100개가 넘는 십자가, 벽에 쓴 글씨등이 발견되었다. 그중 일부는 예수님을 구주, 그리스도로 언급하고 있다. 이 집의 형태는 보통가옥의 모습 그대로지만 1세기말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미 5.8mX6.45m 되는 한 방에 특별한 관심을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방이 바로 예수님께서 머무셨던 방으로 생각된다(막 2:1;3:20). 4세기에 들어서서 어느정도 교회의 모습을 갖춘 이곳에 5세기에는 8각형의전형적인 교회가 건축되었는데 7세기초 파괴되었다가 최근 8각형의 아름다운 교회가 다시 세워졌다.

·가버나움 회당 :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치시고,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을 알아보고, 사람들이 그 가르침에 놀라기도 한 회당은 예수님 당시의 현무암터가 그대로 남아있다. 4세기경 그 터 위에 아름다운 석회암 회당이 세워졌는데, 그 후에 완전히 무너진 것을 20세기에 대충 복구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Korazim


Bethsaida



벳세다(Bethsaida, E-Tel)

텔 벳새다는 갈릴리 호수에서 북쪽 1.5km에 위치해 있다. 벳새다는 어부의 집이란 뜻이다. 벳새다는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인공언덕이며 갈릴리 호수 전체를 전망할 수 있다. 요새화된 성이며 세르(수 19:35)로 알려진 곳이다. 다윗왕조때 중추적 역할을 했던 그술의 영토이며 다윗은 그술왕 달매의 딸 마아가와 결혼했다. 아들 압살롬은 그의 외할아버지의 마을인 그술 마을에 얼마간 머물렀다.

신약성서에 의하면 예수는 그곳에서 중요한 기적을 행하셨는데 이를테면 '오병이어의 기적'과 눈먼자의 치유'등이 그것이다. 중요한 세 제자(베드로, 안드레, 빌립)가 벳새다 출신이며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다른 제자들도 그 도시와 연관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 도시도 고라신과 함께 예수의 책망을 받고 말았다. 벳새다는 이스라엘 땅의 경계에 놓여있던 도시다. 1939년 미국학자인 로빈슨이 에텔(E-Tel)지역이 고대의 벳새다임을 제안한 후 1987년 지리학적 탐사에서 결론지었다.

※ 저주받은 도시 마11:20-24, 눅10:13-15 , 벳세다는 베드로의 고향이며 이곳에서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 부름 받는다. 소경이 고침 받는다(막8:22-26).

Tiberias



티베리아는 헤롯안티파스가 주후 18-20년에 완성한 도시이다. 새로운 수도로 건설된 갈릴리에서 가장 좋은 지역이었다. 하지만 도시건설도중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훼손하는 것은 종교적으로 아주 부정한 일로 이 때문에 티베리아는 처음부터 부정한 도시가 되어 종교적인 유대인은 방문조차 꺼려한다. 예수님 사역에도 티베리아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주후 2세기말 명망높던 랍비 시몬 바르 요하이가 더 이상 부정하지 않은 도시라고 선언한 후, 산헤드린과 많은 유대인과 학자들이 거주하기 시작한다. 팔레스타인 탈무드가 완성된 곳이기도 하며 모음이 저긴 성서가 완성된 도시이기도 하다. 덕분에 이곳은 유대인들의 거룩한 다섯도시중 하나가 되었으며 맛소라 텍스트를 사용하는 우리 기독교인들도 이곳의 학자들을 통해 성서를 번역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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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시: [2004]0801-0805
여행 국가: Israel
여행 도시: 성지 곳곳
홈페이지 :
http://hope.ne.kr/www/bbs/view.php?id=trip_board&no=41

Posted by 어복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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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왔습니다

여기 오는게 정말 두려웠는데
목사님이 여기가 세계에서 젤 안전한 곳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도 여기 올 때에 엄청난 양의 질문을 받았습니다만.. 생각보다는 까다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세계일주권을 보고 신기해서 그걸 더 물어보더라구요 -_-a
다만 같이 오신 선교사님들의 아프가니스탄 비자 덕에 공항서 영어 모르는 척을 했는데 저만 우습게 잘 모르고 예스 했다가.. 선교사님들 억지 통역하는 일이 있었는데... 경찰이 serious 막 이래서 첨엔 진짜 무서웠는데 다행이 아무일 없이 다들 무사히 입국 했습니다 ^^v 감사감사
 다들 그렇게 철저히 하고 특히 여기 법이 워낙 강력해서 치안상태는 정말 좋을 것 같은 생각을 해보내요 다만 아랍 사람들이 여자 여행자들 찍접대는것과 위험 지역에 절대 안간다는 전제 하에서는 생각보다는 안절할 듯 합니다

터키서 뱅기 타면서 부터 2004 예수 행진 행사 중보하시는 간사님들을 만나서 좋은 느낌 받으면서 하나님이 잘 인도해 주시리라는 생각이 무지 많이 들었는데 역시나~ 지금은 예루살렘 중앙교회에서 너무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서 신세도 지고 때 마침 내일 갈릴리 지역과 북쪽을 여행하려는 키부츠에서 공동체 생활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같이 갈 생각 입니다. 여기 오기 전에는 위험하다는 생각과 일정에 압박 때문에 짧게 있으려고만 생각했는데 이틀간 예루살렘의 올드 시티와 예수님 무덤들을 돌아본 결과 최소한 10일은 여기 있어야 겠다고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요르단은 그냥 여기에서 페트라 하루 투어로 다녀오고 나머지 시간을 모두 이곳에 투자를~
여행 시작하고 아프리카 대륙에 처음 내렸을 때의 그 기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그 이후로 그런 기분을 느껴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였습니다. 모든 부분이 성지고 신앙을 가진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뜻 깊은 곳이기 때문에.. 오늘 영국사람들이 보존하고 있는 예수님의 무덤이라 추정되는 곳에 갔을 때에.. 무덤 문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He is not here for He is risen!!!!!!!!!!!!!!!!!!!!!!!!

지금 저는 사진 올리고 노르웨이행 뱅기 예약 등의 일로 밤을 새고 말았네요.. 새벽 6시가 다 되었습니다 ㅠㅜ 그래도 마지막으로 사진은 올리고 자야겠지요...

 한 가지  잊지 못할 일은.. 여기 프랑스애랑 싱가폴애가 키부츠에 일하면서 주말마다 이 곳에 오는데~ 요기 한국 사람들 중에는 제가 영어를 그나마 좀 해서 게덜 해석해주고 영어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싱가폴 애한테~ 사실 터키 여행할 때에 호주애덜이 많이 굴리면서 이야기 해서.. 언제쯤 저런 영어를 편하게 받아드리려나 좀 ~ 마음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다시한번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지요 ㅎㅎㅎ


뒤로 보이는 성벽이 올드 시티 성벽이랍니다

이게 바로 통곡의 벽이랍니다


머 성지라 해도.. 사람 사는 곳은 다 같지여.. 기념품 파는 가게들.. 저 왼쪽으로 바로 무덤교회가 있답니다

저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만지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고정시켰던 바위의 구멍이라 합니다

저 황금돔으로 보이는 곳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장소요 또한 모하메드가 승천했다고 전해지는 장소라 하네요.. 또 오른쪽 언덕으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하실때 ~의 장소라고 합니다 .. 맞나 정확한 기억이..


아멘!


밤에 온 통곡의 벽..

젊은이들의 벤유다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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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시: [2004]0730-0810
여행 국가: Israel
여행 도시: Jerusalem
홈페이지 :
http://hope.ne.kr/www/bbs/view.php?id=trip_board&no=39


Posted by 어복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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