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 깨달은 가르침과 성경 말씀 연결하기

 

 구체적인 성경 읽기를 할 때 우리는 인생에서 최고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인생 최고의 가르침은 깨달음을 받는 순간부터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으면서 노트에 많은 것을 적는다. 하지만 나중에 그 노트를 보아도 무엇을 배웠는지 잘 모를 때가 있다. 반면에 공책에 받아 적은 것이 없을지라도 때때로 생각나는 가르침의 순간이 있다.

 길을 걷다가 그 순간을 회상하기도 하고, 공부하다가 불현듯 그 장면을 그려 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을 생각할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그 순간을 회상할 때마다 새로운 감동이 찾아오며 새로운 소원이 일어난다. 마치 엘리야가 도와준 사르밧 과부의 기름 병에서 나오는 기름과 같이 계속적으로 지식,감동,소원이 공급된다. 이런 가르침의 순간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모세가 호렙산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 그런 가르침의 순간이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이사야서의 말씀을 읽다가 하나님의 소명을 깨닫게 된 순간이 그런 가르침의 순간이었다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3:2)고 말씀한다. 이는 요한이 성경 말씀을 자신의 인생에 구체적으로 적용했을 때 일어났다.

 성경에서 '임하다'라고 번역되는 단어는 헬라어나 영어의 '오다(come)'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외울 때 '나라이() 임하옵시며'는 영어 표현으로 '당신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Let Thy Kingdom Come)'이다.

 다른 언어의 성경에서 '오다'라고 번역된 것이 왜 우리말에서는 '임하다'라고 번역되었을까? 물론 모든 단어가 '임하다'로 번역된 것은 아니다. 우리말성경은 '오다' 가운데 옆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경우를 찾아서 '임하다'라고 번역했다. 이것은 요한이 들은 말씀이 사람 이사야로부터 들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은 이사야를 거쳐 온 그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들었던 것이다.

 말씀의 통로를 넘어 말씀의 주체이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말씀 속에서 존재의 진동을 체험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만날 때 우리는 고막의 진동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의 진동을 체험한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포괄적인 성경 읽기의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포괄적인 성경 읽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상 생활에서 깨달은 가르침을 성경 말씀과 연결시키는 방법이다. 포괄적인 성경 읽기란 관통하는 성경 읽기라고 부를 수 있다. 관통은 실이 구슬을 꿰듯 꿰뚫고 지나가는 것이다. 관통하는 성경 읽기란 성경의 가르침을 실로 삼아 일상적 깨달음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기본적 전제가 있는데, 그것은 성경이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우리가 깨닫는 모든 내용이 성경의 일부분에 대한 해설이 된다는 전제다. 원자핵에 대한 물리학자의 발견도 성경의 어느 한 부분에 대한 주석일 것이다. 성경 말씀은 인생의 실제적 지침이 될 뿐 아니라 일상의 통찰과 지식의 기초가 된다.

 

우리는 어떻게 포괄적인 성경 읽기나 관통하는 성경 읽기를 실행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은 세상의 책을 읽으면서 성경의 핵심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먼저 우리는 일상적인 좋은 내용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무릎을 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내용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참 좋은 내용이구나. 그런데 이 내용이 틀림없이 성경 어딘가에 있을 텐데" 라고 추가적으로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읽으면서 우리는 "먼저 할 것을 먼저 하라"는 세 번째 법칙을 접하게 된다. 그때 이 법칙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6:33)는 명령에 대한 주석으로 연결시킨다.

  

 성경 말씀과 일상적 지식을 연결할 때 우리는 두 가지 유익을 누릴 수 있다.

 

 먼저 우리는 일상적인 가르침을 받을 때 그것을 잘 활용하게 된다.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언제까지 그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좋은 책의 내용을 성경구절과 연결시켜 둔다면 그 책에 대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거기에 꿰어져 있는 다른 통찰을 기억할 수 있다또한 우리는 그 책의 내용을 절대화하지 않게 된다. 아무리 좋은 책을 읽더라도 그 책의 틀을 우리 인생의 틀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대신에 그 통찰을 성경의 기준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성경 말씀은 우리의 인식에도 기본적인 틀을 제공한다. 우리가 깨닫는 내용을 성경 원리의 일부로 재구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경과 일상적 지식을 연결시킬 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두 번째 유익이 있다. 그것은 성경 말씀을 매우 구체적이며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표현 방식은 예수의 모범을 따르는 것이다포괄적이며 관통하는 성경 읽기를 실행할 때 우리는 율법학자처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말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율법학자는 율법을 가르치면서 율법만을 언급했다. 그들의 율법 강론 속에는 구체적인 인생과 세상이 실종되어 있다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할 때 사람들의 일상적인 세계를 실례로 가르치셨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일상적인 깨달음과 사건을 관통하며 공부하셨기 때문이다. 포괄적인 성경 읽기를 할 때 우리도 예수님처럼 말하며 가르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7:28~29)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세상 속에 담긴 흔적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하지만 가장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도구는 그분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흐르는 곳에 그분을 향한 바른 자세인 믿음이 자라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공기만 진동하지 않는다. 그분의 말씀우리의 영혼과 인생을 진동한다. 그 말씀의 진동을 체험하게 될 때 우리 사고의 지평이 확장되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미래가 열리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들리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고, 우리의 미래를 열어가게 된다.

 

 우리는 구체적인 말씀 듣기와 포괄적인 말씀 듣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구체적으로 소개함으로써 그분의 진동하는 말씀을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일상적 지식을 연결해서 우리 삶의 지표가 되는 말씀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말씀과 가까이 사귐으로써 우리는 자유인이 되기 시작한다.

 

 

믿는다는 것의 행복

1부 신앙이 열어 주는 시야 / 말씀론, 언어 안에 새로운 자아와 미래가 있다.

-장경철 지음

Posted by 어복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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