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교대원

-엄상익/ 변호사

성경을 보면 자꾸만 낮은 데로 가라는 게 주님의 가르침이었다. 대접을 받는 쪽보다 스스로 수모를 당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성경에서 십자가의 의미는 수모를 당하고 아래로 내려가고 죽음까지도 각오하란 것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나는 물리적인 십자가가 아니라 스스로 당하는 수모와 모멸이 나의 십자가라고 생각했다. 좋은 차와 명품으로 외모를 꾸미지 않았고 한동안은 한복을 입고 걸어 다녔다. 구치소를 갈 때도 종종 지하철을 타고 가서 역에서 내려 다시 다람쥐 택시를 탔다. 다람쥐 택시란 승객당 천 원씩 받고 역에서 구치소 정문 앞까지만 다니는 택시다. 그 택시를 타면 면회 온 사람들의 애환과 심정을 그대로 옆에서 들을 수 있었다. 택시에서 내리면 구치소 사동 안까지 긴 길을 혼자 걸어가곤 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구치소 입구의 경교대원이 걸어가는 나의 앞을 막았다.

 어이, 아저씨 주민등록증 보여 주세요.”

나는 고유번호가 찍힌 변호사 신분을 알리는 배지를 보였다.

 주민등록증을 보자니까요?”

그는 내가 변호사가 아닌 걸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사이에 옆으로 고급 외제 차를 탄 다른 변호사들의 차가 통과했다. 경교대원들은 부동자세를 취하고 차에 대해 거수경례를 했다.


 
저 차를 탄 변호사는 통과시키면서 걷는 나는 왜 막죠?”

 그거야 차 앞유리에 변호사 표지가 있기 때문이죠.”

 나도 몸에 달린 변호사 배지를 보였는데 왜 차별할까?”

 그래도 아저씨는 차를 안 탔잖아요!”

경교대원은 별 이상한 사람도 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변호사는 걸어 들어가면 안 돼요?” 내가 웃으면서 물었다.

 그건 아니지만….” 젊은 경교대원은 할 말이 없는 것 같았다.

 경교대원 신분증 좀 봅시다.”

 경교대원이 신분증이 어디 있어요? 이렇게 서 있으면 되지…”

 가짜가 앞에 서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에이, 아저씨도. 어떻게 경비를 가짜가 서겠어요?”

 경교대원이 씩 웃었다. 내가 그에게 알리고 싶은 것은 겉모습으로 인간을 평가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어떤 모멸도 예수님이 당한 모욕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상하게 보던 경교대원의 눈빛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진리를 감지하는 또 다른 마음의 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농담같이 계속 말했다.


 
가난한 변호사라서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데 뭐 안 됐수?”

 아니오.”

 외제 차를 타고 다니는 부자 변호사와 걸어가는 가난한 변호사, 이 두 사람의 능력을 타고 다니는 차로 말해 주나 봐요?”

 내가 경교대원에게 다시 물었다.

 사실은 아저씨가 훨씬 더 좋아 보여요.”


 
경교대원이 싱긋 웃으면서 이젠 깨달았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가로수가 드문드문 나 있는 한적한 길을 유유히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너는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그러면 내가 너를 자유하게 하리라. 예수님이 그렇게 나를 향해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출처: 목마르거든 / 이천십일년 일월 / 185

Posted by 어복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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