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이제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합니다. 봄과 여름을 지나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느라 애쓴 탓에 잎사귀들이 많이 지쳤습니다. 푸른 생기를 모두 꽃과 열매에게 내주었나 봅니다.

 

그런데 조용히 쉴 채비를 하는 이 가을 숲에 누군가는 아주 신이 났네요. 발길이 머무는 곳마다 환한 얼굴과 향기로 반겨 주는 가을 들국화 입니다. 그야말로 들국화 천지입니다. 노란 병아리를 닮은 산국과 감국, 해맑은 미소를 짓는 구절초, 보랏빛 고운 때깔의 쑥부쟁이... 이렇게 들에 핀 국화를 모두 일컬어 '들국화'라 부릅니다. 정작 '들국화' 라는 이름의 꽃은 없는 셈이죠.


unasyn님이 촬영한 들국화.
 

지난봄과 여름에는 어디에 꼭꼭 숨어 있었을까요? 홀연히 나타나 쓸쓸한 가을 숲을 치장하는 들국화 덕분에 이 가을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더군다나 긴 겨울을 대비해야 하는 곤충들의 배를 든든히 채워 주니 참 고마운 친구지요.

 

들국화는 '기다림의 꽃' 입니다. 지난 계절 동안 얼마나 많은 꽃이 제 아름다움을 뽐내고 지나갔는지요. 잔설을 해치며 제일 먼저 봄 소식을 전한 복소초부터 얼레지, 제비꽃, 은방울꽃, 구슬붕이, 금낭화, 할미꽃, 나리꽃... 저마다 화려한 빛깔과 모양으로 우리 눈과 마음을 즐겁게 했습니다.

 

우리 같으면 다른 꽃들에게 질세라 "나도 여기 있어요!" 하고 꽃망울을 툭 터뜨리고 싶어 안달이 났을 겁니다. 그러나 들국화는 오랜 시간 자신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모두 떠나 조금은 초라해진 가을 숲을 진한 꽃 향기로 가득 채웁니다.

 

그토록 수많은 꽃들이 모두 저마다의 때가 있다니, 보이지 않는 자연의 질서가 신비할 뿐입니다. 자연과는 달리 우리는 기다릴 줄 모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처럼, 누군가 잘되고 성공하면 나는 뭐하나 싶어 서글픕니다. 꼭 질투해서가 아니라 남들에 비해 자신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까닭이겠지요.

 

아침꿀물님이 촬영한 구절초?.

가을 숲을 고운 빛깔과 향기로 채우는 들국화들이 위로를 건냅니다. 세상엔 모두 저마다의 시간이 있다고, 기죽지 말라고, 힘내라고.
 

내일을 준비하며 오늘을 열심히 산다면 언젠가 나만의 향기를 세상에 뿜어 낼 그날이 꼭 올 겁니다. 긴 인생의 시간표에서 그 때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분명 그 시간이 찾아올 겁니다.

-알면 사랑한다, 저자 최병성 /좋은생각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6:9



Posted by 어복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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